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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항해의 역사

바이킹의 배들

by 부독자 2022. 10. 4.

민족 특유의 진취적인 경향으로 활발한 탐사 항해에 나선 북유럽의 새로운 해양 강국들 덕택에, 16세기에 이르러 범선과 관련된 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저명한 항해사 레인은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옛날 뱃사람에게 범선의 삭고 장치는 아주 희한해 보일 테지만... 위대한 개척의 시에 대, 혹은 한 세대 이전의 배를 지휘하던 선장은 넬슨 제독이 활약하던 시대로 가서 배를 지휘하게 된다. 해도 새로운 기술을 익힐 필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삐거덕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호두나무 껍질과 다를 바 없는 코 그, 노가 복잡하게 뒤얽혀 험한 바다에서는 도무지 항해할 수 없는 갤리선, 그리고 흘수선이 높아서 꼴사나워 보이는 캐러... 이렇게 구조적 과잉 상태였던 중세 범선들이 신세계를 향해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 내기까지 과연 어떤 혁신이 있었을까? 사실 그런 배들과 이후 수백 년간 만들어진 배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은 없다. 다만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조선술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구조 체계와 삭고 장치가 발달했을 뿐이다. 범선의 새로운 요구란 2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배에 화포를 탑재함에 따라 해전의 전략과 전술을 변경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둘째, 새로운 영토에 대한, 혹은 새로운 영토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과 부에 대한 갈망이다. 유럽 사회에서는 중세의 모호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또다시 이러한 갈망이 강렬하게 솟아났다. 물론 이 2가지는 서로 무관한 사항이 아니었다. 범선 갑판에 화포를 배치한 것은 14세기 초부터다. 1336년 앤트워프 해전에서 포위 공격할 때 프랑스 배들이 화포를 사용했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제노바 갤리선이 화포를 사용하여 이민족 해적과 싸웠다. 안정성이 낮은 배의 갑판 위에 화포를 배치하면 효과적인 전쟁 무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부담만 된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게다가 보통 움직이는 적선을 명중시켜야 했으므로 화포를 실은 배는 상당히 민첩해야 했다. 그러나 중세 후기의 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안정성과 기동성이 부족했다. 캐럴이 등장하자 이런 문제점은 일부 개선됐다. 갤리선에서는 화포를 세로축에 놓고 발사해야 배가 전복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갤리선보다 안정적이었다. 캐럴은 코스보다 빠르고 갤리선보다 항해하기에 편리했다. 캐럴이 활약한 무렵인 15세기에 유럽의 최고 강대국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고, 다음으로 프랑스, 영국, 한자 동맹 도시국가들이 있었다. 이 나라들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활한 대양 너머의 먼 대륙에 눈독을 들였다. 따라서 속도가 빨라 항해 기간을 줄일 수 있으며 선원 숫자가 적어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범선이 필요했다. 이러한 배들은 높은 이윤을 남길 물품을 신고 돌아올 수 있도록 공간이 넓어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비교적 좁은 지중해에서 항해하던 로마 화물선은 3단 노 군선의 호위를 받았지만, 동인도나 서인도 제도같이 멀리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상선의 경우 그런 방법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15세기에는 상선에도 무기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항해 사상 최초로 군선과 상선의 경계가 희미해진 것이다. 둘 다 비슷한 요구에 직면했던 까닭에 모양이 엇비슷해졌다. 군선과 상선은 똑같이 캐럴과 유사한 선박에 화포로 무장을 갖췄다. 전해지는 바로는 무역을 위한 원거리 항해에서 초기 임무는 사실상 새로운 영토에 대한 정벌이었다. 결과적으로 앞서 도착한 사람들로부터 값비싼 물자를 약탈하고 무사히 지켜내는 것이었다. 16세기의 배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더 빠른 속도를 내고 거친 바다에서 항해하려면 규모가 커야 했다. 다음으로 배수량이 충분하여 화물과 화포를 넉넉히 실을 수 있어야 했다. 돛대와 돛의 수를 늘려 기동성 등 각종 성능을 향상할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구체적인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14세기 캐럴을 변형, 발전시킨 범선이 등장했다. 키는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도 채택된 최고의 선체는 이 물이 날렵하고 고물은 각진 캐러멜이었다. 캐러멜은 유럽의 해상 운송업계 전반에 널리 쓰이는 모델이 되었다. 캐러멜이 포르투갈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래서 지중해와 환경이 전혀 다르고, 육지로 둘러싸인 북유럽 근해와도 크게 다른 대서양의 험한 파도에 적응하기 좋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추진력의 수단으로서 노는 모습을 감추었다. 16 세기 후반의 큰 해전에 관한 기록을 보면 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중해 도시국가 베네치아의 해양력을 상징하는 아르 새날에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베네치아는 노랄 것은 갤리선으로 시작하여 노의 힘으로 해양력을 유지해 온 나라였다. 아르 새날에는 한때 유럽 선박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다른 나라의 배와 조선소에 빠른 속도로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갤리온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갤리온은 15세기 캐럴이 발전하여 만들어졌다. 캐럴과 비교하면 모양은 비슷하지만 낮은 편인데, 특히 이물에 세운 선루가 훨씬 낮아지는 변화가 있었다. 어원을 따져보면 갤리온은 분명 지중해에서 활약한 '갤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조선술 면에서 보면 갤리온이 갤리선과 닮은 점이라고는 캐럴보다 선체가 갸름하다는 사실 외에는 하나도 없다. 갤리와 캐럴을 비교하면 오히려 캐러 쪽이 갤리온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영국에서 탄생한 갤리온은 새로운 해전용 무기인 화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고안한 배였다. 화포는 무려 300년 동안 범선의 형체와 외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캐럴에 무기를 장착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여 갑판과 선루에 화포를 설치하자 원래 안정성이 그다지 높지 못했던 배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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