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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항해의 역사

유럽의 선박들

by 부독자 2022. 10. 4.

북유럽 선박은 이어대기 공법이었으며 선체가 높고 양 끝이 점점 가늘어졌다. 측면에 키가 하나 있고 돛은 사각형이었다. 이런 특징들을 기초로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범선이 탄생했다. 북유럽 인근 해역에서 흔히 보던 이 배는 얼마 후 더 멀리 떨어진 지역의 조선술의 영향을 미쳤다. 상업 수요가 늘어나 북유럽 사람들이 배를 몰고 지중해로 나가고 제노바 사람들 또한 영국의 항구로 몰려간 덕택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타사 한배가 바로 '코크'이다. 이 13세기부터 수많은 문장 紋章에 등장한 배의 모습에는 바이킹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이 무렵의 배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윈체스터 성당에 있는 12세기 후반의 세례반先禮盤에 새겨진 부조이며 다른 하나는 스웨덴 고틀란드에 있는 '믿음의 교회'에 있는 13세기 초반의 벽화다. 이 부조와 벽화는 이집트 배들이 나일강을 떠나 넓은 바다로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인 그 유명한 '꼬아 만든 굵은 밧줄' 이래 항해 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을 최초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그 발명품이란 바로 선미재의 키다. 최초의 돛단배가 탄생한 이래 무려 4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내내 돛으로 나아가던 노를 지어 가든 간에 돛단배는 모두 측면의 노로 방향을 조향했다. 방향타용 노는 지중해 일대의 배에서는 언제나 2개였고 북해의 배에서는 1개였다. 무역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던 북유럽 국가들에는 바다를 건너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니 배 성능을 개선할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 가운데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서미째의 키였다. 측면의 노로 조종하는 방법은 선체가 균일한 용골로 이루어지고 있고 노를 저어 움직이는 갤리선에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돛을 달고 항해하는 배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조종하면 노가 물 밖으로 나오기 일쑤였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때는 노가 휘었다. 노의 회전축이 높은 위치에 하나밖에 없는 경우에는 부서지기까지 했다. 반면에 중앙선에 위치한 켜는 금속 경첩으로 선미재에 고정되어 언제 나 물속에 있었고 휘지도 않았다. 넓은 대양이나 원양으로 항해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방식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결국 전 세계의 모든 배가 키를 달고 항해하게 되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점점 더 먼 거리를 항해하면서 파도가 높게 쳐서 노 젓기가 어려운 환경을 만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항해술을 발전시키는 한편 노와 노잡이들을 조금씩 줄여 나갔다. 기술적 측면에서 코스는 현대 범선의 원형에 해당한다. 코스는 노잡이들이 앉는 가로대 대신 우수한 돛 시스템을 갖췄으며, 전례 없이 적재량이 크고, 장 거리 항해에 알맞은 설비를 자랑했다. 선체는 여전히 이어대기 공법으로 만들었지만 아주 견고했다. 이것은 또한 하중을 받는 요소가 되었다. 배의 양 끝은 점차 가늘어졌으나 끝부분이 측면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양옆을 높게 한 것은 적재량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선수로는 상갑판의 주요 구조물, 고물에 위치한 선미로도 점차 중요성이 커져 나중에는 선체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었다. 이 규모 면에서 코스는 중간 정도였다. 14세기 코 그는 전체 길이가 30.4미터 이하였으며 폭은 최대 7이 터였다. 중세의 화물선보다 날렵한 배로 볼 수 있지만 흘수가 3미터 정도였고 건현도 이와 비슷했다. 이는 코드가 규모는 작았어도 화물 적재량이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늘어나는 무역과 항해 수요에 발맞추기 위해 화물 적재량을 늘려야만 하자, 코스는 배 모양과 장치는 그대로 유지한 채 한 단계 진화하여 헐크(hulk, 크기가 유희 큰 배 또는 감옥에선)'가 되었다. 코스와 헐크는 돛대가 하나였으며, 돛도 커다란 사각 돛 하나뿐이었는데 '보닛 bonnet을 더하거나 빼서 길이를 늘이거나 줄일 수 있었다. 보닛은 돛의 아래 모서리를 따라 캔버스 천으로 두른 띠를 말한다. 고정된 출범 삭(宿呪索 새로 생겼다. 돛을 다루는 기술도 정교해졌으나 살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돛대가 3개인 범선이 탄생한 것은 순전히 당시에 지중해를 누비던 배인 캐럴(carrack 14~16세기 스페인, 포르투갈의 무장상선)의 영향이다. 그 후에는 지중해 상선들도 코스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로마화 물건이 사라지면서 함께 잊혔던 사각 돛을 다시 도입하게 되었다. 코스와 그보다 덩치가 큰 자매 격인 헐크는 북유럽의 해상 교통을 독점했다. 이 배들은 영국의 5개 항 1구에서 활약하는 영국 상인들이 운영했다. 그들은 배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얻고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힘을 합쳤다. 독일 무역도시들이 결성한 한자 동맹의 상선이라고도 한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어느덧 중세의 무지에서 탈피하고 있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더 나아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캐러 선단을 파견하여 신항로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캐럴과 코스의 전통을 결합하여 진정한 근대적 범선이 탄생했다. 바로 16세기의 갤리온이다. 캐럴은 측면이 높고 적재량이 큰 배로 갑판이 4~5개 있고 선루 2개가 앞뒤로 있다. 3개의 돛대를 세우는데 뜻은 사각형 주 돛, 전면 중간 돛과 주 중간 돛으로 나뉜다. 쉿 돛대 (3번째 돛대)에는 삼각돛을 단다. 적재량은 2000톤 이상이다. 주로 교역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따금 전투선으로 쓰이기도 했다. 특히 제노바와 포르투갈에서 널리 사용했다. 14세기 후반에 작성된 ‘파치가니 보면 돛이 2개이며, 주 돛대에 사각 돛이, 쉿 돛대에 삼각도 다리 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배는 이전의 갤리선과 지중해 인근 국가들의 전형적인 배인 라운드 쉽고, 북유럽 인근 해역의 코드가 지닌 특징을 모두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캐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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