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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항해의 역사

노젓는 배

by 부독자 2022. 10. 4.

캐러 벨 리 포르투갈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포르투갈의 항해왕 엔히크가 아프리카 해안으로 원정을 떠날 때 탄 배도 캐러멜이다. 그가 탄 배의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지만 작은 편인 산타마리아호보다 작았다는 사실, 즉 갑판 길이가 20미터도 안 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기술적으로는 특별히 흥미로운 점이 있다. 캐러멜은 측면이 낮고 흘수가 않으며 배 폭이 상당히 좁고 배수량이 적었다. 이물에 있는 흘수선은 매우 섬세하고 움푹 들어간 모양이고 고물은 각형 角形으로 되어 있었다. 돛대는 2개였는데 가끔 고물 늑판 위에 쉿 돛대를 세워 3개일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 쉿 돛대에 치는 돛(세로돛)은 밧줄로 범민(돛을 펴기 위해 선체에서 뻗어 나온 막대기)에 묶었다. 돛은 삼각돛을 썼다. 이 모든 특징이 결합한 캐러멜은 동시대의 다른 배들보다 빠르고 바람을 거슬러 달릴 수 있었다. 항해왕 엔히크는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프리카 연안을 답사하고 나서 돌아오는 뱃길에 자주 부는 바람이 배의 항로와 반대 방향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포르투갈의 타호강에 가면 널찍한 삼각돛을 단 작은 배를 볼 수 있다. 제한 없이 같아 frigatas라고 불리는 이 배들은 아치 모양으로 흰 높은 이물과 날렵한 형체를 지니고 있어, 살구보다 선체 모양에서 캐러멜과 똑 닮았다. 갤리선은 선체가 길고 가늘며 삼각돛과 여러 층으로 된 노가 있는 배의 일종으로, 주로 전투선으로 쓰였다. 중세 시대 지중해의 갤리선은 그리스, 페니키아 그리고 나중에는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3단 노 갤리선에서 유래했다. 고대의 3단 노 갤리선은 추진력을 노에 의존하고 돛은 보조 장치로 이용했다. 중세의 갤리선은 물결이 잔잔하고 바람이 약한 라틴계 민족의 내해를 벗어나면 항해에 어려움이 있었던 반면, 사각 돛만을 고집했던 바이킹족의 무거운 라운드심은 바람이 약하거나 풍향이 자주 바뀔 때 불리했다. 따라서 서기 1000년 이래 수백 년 동안 최고의 군선 자리는 갤리선이 차지했다. 갤리선은 가볍고 길고 날렵하여 움직임이 민첩했으며, 항해하기에 비교적 짧은 거리인 지중해를 누비기에 적절한 속도를 냈다. 삼각돛이 있어서 바람이 유리한 방향으로 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바람을 거슬러 나아갈 수 있었다. 제노바, 베네치아, 프랑스, 스페인은 모두 대부분 갤리선으로 이루어진 선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갤리선의 고향인 투르크와 아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갤리선은 비잔틴 왕조의 배 도로 문의 후예였으니 말이다. 중세의 갤리선은 고대의 갤리선과 마찬가지로 선체가 길고 흘수선이 낮았으나 뱃머리 쇠붙이는 없었다. 뱃머리에 길게 튀어나온 구조물인 선수돌출부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흘수선 위로 완전히 나와 있었다. 이 돌출부는 적선을 들이받을 때보다는 상대방 배로 옮겨 탈 때 더 많이 사용됐다. 5세기 갤리선은 뱃고물이 위로 치솟지 않고 둥그스름한 모양이었다. 선수로 양옆에 고정해 배를 조종하던 방향타용 노는 보다 현대적인 장치인 선미재에 고정한 키로 대체됐다. 선미재 위에는 가벼운 선루를 세웠다. 선루라고 해도 캔틸레버 cantilever같이 내뻗은 단에 난간을 두르고, 악천후에서 선장과 키잡이를 보호하기 위한 차양을 가벼운 골조로 떠받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캐러멜과 마찬가지로 갤리선도 돛대가 2개 혹은 3개였다(아주 작은 갤리선에서는 1개뿐이었다), 그리고 원대 2개를 한데 묶어 만든, 긴 활대 쪽으로 휘어진 삼거동을 달았다. 베네치아 갤리선은 뱃머리 쪽으로 기울어진 긴 깃대를 특징으로 한다. 갤리선은 대개 군선으로 쓰였다. 군용 갤리선에는 고물에서 이물까지 중앙선을 따라 좁은 통로만 있고 노잡이들의 좌석 위로 갑판이 없었다. 물론 상선으로 쓰인 갤리선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노와 조잡 이는 그대로 있었지만 없어지고 선체 모양이 조금 더 볼록해졌다. 이렇듯 다양한 갤리선은 노잡이들의 수와 배열 방법으로 구분했다. 노가 1쌍이면 '갈래와 푸 스타 galea fustal', 노 3개가 한 묶음을 이루면 '갈래와 소칠레(galea stile) 엮는다. 갈래와 그로서 ‘gale gross'는 상업용 갤리선으로 규모가 컸는데, 특히 배 길이와 폭의 비율이 6:1이었다(갈래와 소틸레의 경우 8:1), 그리고 16세기 바다를 장악한 갤리온의 독보적 지위에 도전하는 갈레아차galeazza' 혹은 '갈레아스 gale ass'가 있었다. 이 유형은 훌륭한 돛과 돛대를 갖춰 성능을 높였고 군사적 목적으로 포를 장착했다. 갤리선의 크기에 관한 정보가 담긴 기록은 많다. 베네치아의 마를 치아나 도서관에 가면 베네치아 조선업자 테오도르에 니콜로 Theodor de Nicol과 갤 기선의 크기를 종류별로 모두 정리해 놓은 기록이 있다. 그에 따르면 포스타는 길이 25.9미터에 최대 폭이 약 4미터, 건현이 최대 1.4미터였다. 솥일레는 길이 46.5미터, 폭 5미터에 건현 1.7미터, 그로 사는 길이 46미터, 폭 7.5미터, 건현이 3미터였다. 1275년 샤를 그 앙 주 Charles Id' Anjou가 발행한 문서에도 상세한 정보가 실려 있다. 그것은 흘수선이 28.2 미터, 전체 길이가 약 40미터, 폭 3.7미터에 건현 2마 터 짜리 갤리선을 제작하라는 명령서였다. 이 갤리선의 돛대는 2개로 하되 주 돛대는 높이 18미터, 직경 3.3미터, 활대 길이 26.7미터이며 쉿 돛대는 높이 11미터, 최대 직경 2.8미터, 활대 길이 17미터로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16세기 후반, 갤리선 최후의 걸작인 기독교 진영의 갈 레아 차들이 화포에 불을 뿜으며 투르크족의 갤리선들을 부숴버렸다. 레판토 해전이었다. 같은 시기 칼레에서는 영국 갤리온이, 네덜란드 앞바다에서는 네덜란드 갤리온이 갤리선으로 이루어진 스페인 함대를 무찔렀다. 이 두 전투로 갤리선의 시대는 막을 내렸으며, 노잡이에게 의존하는 배보다 돛을 단 배가 속도와 기동성 면에서 우월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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