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상은 말을 타고 적군을 짓밟아 물리치는 왕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컷 워터 (이물에서 제1 사장 밑으로 돌출된 구조물로 물결을 헤치는 부분)의 측면은 사자, 유니콘, 왕 그레이하운드 그리고 영국의 국화인 장미,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 프랑스 바루봉 왕가의 상징인 백합, 아일랜드의 하프 등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장식했다. 이물 정면에는 사자 등에 탄 큐피드, 2명의 사티로스와 6명의 천사를 새겨 넣었고, 선체 측면은 방패, 갑옷과 투구, 악기, 황도 12궁 등으로, 둥근 천장과 창문이 있는 고물 쪽 전망대는 신화에 등장하는 도상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선미 늑판에는 넵튠, 주피터, 이아손, 헤라클레스 와 함께 승리의 여신상을 세웠다. 이 모든 장식에 금 박을 잔뜩 입혀놓아서 이 갤리언선은 '황금빛 악마로 불렸다. '서버란 오브 더 시' 호는 외관상으로도 당대 최고였지만 이 배가 중요한 진정한 이유는 돛과 돛대에 있다. 18세기 이후 제대로 자리가 잡히는 돛 형식을 미리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형과 중간 사형 돛을 모두 큼직하게 만들었으며 앞 돛대와 주 돛대에는 중간 돛 위로 돛을 더 달았다. 추가한 뜻의 명칭은 '톱 갤 헌트 topgallant와 '로열 royal'이다. 보나 벤 투르는 확실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뒤 돛대에는 삼각형 세로돛 위로 사각 돛 두 개를 더 달았다. 이를 각각 쉿 돛대 중간 돛과 톱 갤 헌트'라고 불렀다. 서버란 오브 더 시 호는 선체 모양에도 특별한 점이 있었다. 사각형 선미늑판이 없어지고 고물이 둥근 곡선을 이룬 것이다. 이는 그 이후 제작된 영국 왕실의 모든 배를 다른 나라 왕실의 배와 구별하는 특징이 됐다. 이 배는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늘 승리를 거두였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 배는 1696년 장교 숙소에서 양초 하나가 넘어지는 바람에 발생한 화재에 의해 파괴되었다. 갤리온이 활약하던 시기에 범선을 구분 이는 약 60미터였다(일정한 선 이상이 되면 조금만 구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선체 형태와 돛 모가 커져도 소요되는 목재의 수직하중이 불리하게 작용한 설비였다. 그런데 화포의 성능이 주목했다. 따라서 새로운 재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받음에 따라 범선도 화포를 탑재하기 위해 점점 고 이유에서 19세기 후반에 강철이 도입됐다. 강철은 처음에 모가 커졌다. 영국인들은 화포를 최대한 많이 탑재는 구조재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선체에도 사용됐다. 길이 하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유례없이 규모가 큰 65미터 이상인 배를 만들려면 강철을 써야 했다). | 범선을 건조했다. 그런데도 배 길이를 무 프랑스는 범선 제조에 마지막으로 뛰어들었을 때 | 한정 늘리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나무라는 재료의 문에 다른 나라가 저지른 실수를 피해 갈 수 있었다. | 특성상 구조적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강도를 프랑스의 배는 다른 나라의 배보다 조금 더 작지만 손상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목조 선박의 최대 길 폭이 넓었고, 화포 개수도 적었지만 정확하게 조준해서 쓸 수 있도록 안정성이 높은 갑판에 설치했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이 하층 포 열色 列 갑판에 있는 화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안 했다. 영국 범선에서는 화포를 싣기 위해 하층 포 열 갑판을 흘수선에 가깝게 배치한 결과 파도가 치면 갑판이 기울거나 배가 좌우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포열 갑판과 포대 하나를 없애고 배를 전체적으로 가볍게 하여 배의 기동성을 높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나라(18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경쟁을 펼치는 구도였다)가 서로의 설계를 모방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본적인 차이점도 점점 없어졌다. 따라서 갤리온의 진화는 설비들을 얼마나 적 절이 조율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 16세기부터는 선루를 낮추는 경향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장식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전문적인 미술가인 장식 담당자들이 왕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있는 힘껏 기량을 발휘하려고 하면 그 배를 지휘할 선장이 돛 아래에 그런 장식이 있으면 위험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편리하지 못하다며 반대했다. 수많은 프랑스 선박을 장식한 유명한 예술가 피에르 포예트 Pierre Puyet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화려한 장식 중에 적어도 일부는 배가 해안에서 멀어지자마자 바다 밑으로 내던져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돛과 돛대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로마 배에서 쓰이다가 중세에 보닛으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던 출범식이 사각 돛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출범식은 15세기에 소형 범선에서 잠시 부활했다가 17세기 들어 커다란 중간 돛에 다시 장착되기 시작했다. 축 범 싹이 생겨 보닛이 없어지자 바람이 약하게 불 때는 활대의 끝에 이어진 아래 활대에 연결된 측면 가로돛을 활짝 펼쳐 돛 면적을 늘렸다. 한편 정범식 돛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중간 사형 돛은 곧 지부로 바뀌었고, 돛대 사이에 굵은 밧줄로 받친 삼각 세로돛을 달았다. 뒤 돛대에는 전통적인 삼각돛 대신 정범식 세로돛 쉿 돛대 밑에 다는 세로돛을 스팽커spanker' 라고 함-옮긴이를 달았다. 쉿 돛대의 세로돛은 처음에는 개프golf, 종범의 주 상부를 펼치기 위한 원대 - 옮긴이로만 달다가 나중에는 앰프와 아래 활대를 함께 사용했다. 돛 체계가 전체적으로 바뀐 이유는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때 배의 기동성을 증진하기 위해서였다. 18세기에는 대형 전투선이 전 세계의 대양을 누빈다. 전투 범선은 무시무시한 화포를 줄지어 배열하여 더욱 웅장해 보였다. 양 끝의 평평한 상층 포 열 갑 판 위로 간단한 구조물이 있었으며, 복잡한 설비를 갖춘 돛대 3~4개가 높이 솟아 있었다. 대 1 형 전투선은 서서히 갤리온에서 전열함으로 발전 1 했다. 이런 배가 전열함' ship of the line, 전투선을 특별히 칭하는 말 옮긴이라고 불린 이유는 함대를 이루고 열을 지어 늘어서서 항해하다가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때 각각의 배는 자기 앞에 있는 배의 무장 이 취약한 고물과 뒤쪽에 있는 배의 이물을 보호했다. 전투선에는 세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서로 이어지는 포열 갑판이 2~3개씩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투선은 화포 숫자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최소 90문의 화포를 탑재해야 1급이고, 그보다 적으면 2급이나 3급이었다. 선체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가 더 작고 포열 갑판이 하나뿐인 프리깃 Frigate 은 4급, 코르벳 1 Corvette는 5급이었다. 4급이나 5급 범선은 너무 작아서 전투선으로 쓰지 못했지만 눈' 역할을 하거나 단독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배들은 비교적 튼튼해서 자신보다 빠른 배와 맞서 싸우는 한편 느린 배를 포획할 수 있었다. 또한 속도가 빨라 화포를 잔뜩 실은 적선을 피해 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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