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상업용 범선이 사라진 뒤 여러 해 동안 돛을 달고 먼바다에서 항해하는 관행을 이어 나간 것은 세계 각국의 해군이었다. 해양 전통이 있는 나라라면 해군 함대에 적어도 한 척의 범선은 포함한다. 보통 범선은 사관후보생이나 장교들의 훈련에 사용하거나 국가를 대표하는 임무에 동원된다. 항해 훈련 선이 외국 항구를 방문할 때는 외교 사절단으로 간주하므로 가능한 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주의 깊게 준비한다. 범선은 훈련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지만, 훈련 임무는 여전히 돛의 생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범선이 초보자 교육에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늘날 해군 함대와 상선 선단은 오직 기계 장치로만 추진력을 내고 있으며, 돛으로 항해하는 것과 현대 해운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해 교육에 돛은 확실히 유용하다. 돛을 올리고 항해하면 바다와 직접적인 접촉을 갖게 된다. 단순히 배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 기만한다 해도,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 범선을 통한 항해 연습은 사람의 한계와 잠재력을 인식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얻는 과정이다. 세계 각국의 해군이 지금까지도 이론 교육과 항해 훈련을 통합해 여 실시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늘날의 항해 실습은 실제 항해와 다른 면이 많다. 예컨대 돛을 조종하려고 돛대 꼭대기까지 손을 뻗어야 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우선이다. 1993년 이래 해마다 '항해 훈련 안전 포럼'이라는 제목으로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 포럼에서는 대형 범선 승선 시의 안전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데, 특히 활기를 띠는 토론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선원들이 돛대를 타고 높이 올라갈 때 사고를 방지하는 문제다. 범선의 황금시대 이후로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도 선원 2명이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오늘날 범선을 타고 항해할 때의 생활은 19세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선상에서 체벌하는 관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승무원과 배의 안전을 위해서는 명령에 즉시 복종하는 규율이 필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선원들이 그물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훌륭하다. 클 리퍼나 프리깃에서 숙소로 사용하던 갑판 아래 공간 이 늘 축축하고 답답하며 병균이 득실거리던 것과는 판이하다. 오늘날의 선원들은 훌륭한 의복과 위생 조건 덕택에 예전 같으면 장교도 꿈꾸지 못했을 정도로 삶의 질이 높아졌다. 선상의 위생 환경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비용을 라르손 Bjorn Larson이 쓰는 통해 과거 선상의 의료 환경을 살펴보자. “나는 약을 쓸 줄 알지만 대단한 능력이 못 된다. 적어도 신체 내부에 문제가 있을 때는, 문드러지거나 상처가 난 피부는 딱딱한 옷에 불과하다. 팔과 다리를 다친 경우에는 눈을 가린 채 절단하면 된다. 선원들이 밧줄, 가느다란 끈, 갈고리 장대를 가지고 일하듯 우리는 바늘, 가위, 인두를 사용하여 일한다. 그러나 나며 지는 어떻게 한다? 피 뽑는 기구, 온찜질과 냉찜질, 장뇌를 탄 술이나 그냥 술을 몇 방울 떨어뜨리기, 장운동을 촉진하거나 설사를 멈추게 하는 요법. 고작 이런 것들이다.” 물론 항해 훈련 선이 현대에 와서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항해가 이루어진 이후 민간 영역과 해군 영 역에는 언제나 훈련 선이 존재했다. 그러나 예전에는 배가 선원을 훈련하는 역할과 동시에 군선이 내 상선의 임무를 수행했다. 즉 훈련생들이 배에 타고 직업 선원들과 함께 일했다. 마지막 범선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관행이 극에 달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직업 선원 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에릭슨이 소유한 모든 배에서는 선장, 이등 항해사, 갑판장, 돛 수선공만 숙련된 직업 선원이었다. 나머지는 실패할 수도 있는 모험에 이끌렸거나 선원이라는 직업이 전망이 좋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느 나라 해군이나 상황은 비슷했다. 영국 선박은 여러 명의 사관생도나 실습생을 태워 유급 선원과 다른 임무를 맡겼다. 실습생들은 빈 갑판을 숙소로 사용했다. 실습생들은 다양한 조종술을 체험하며 실무 교육받았다. 양차 대전 사이에는 화물을 운송하는 동시에 훈련 선 역할을 수행하는 선박이 많았다. 1921년 유럽에서 만든 최후의 돛대 5개짜리 범선인 쾨벤하벤호가 그런 경우로, 이 배는 장교 5명, 선원 10명과 훈련생 45명을 태우고 항해했다. 쾨벤하벤호는 1928년 12월 14일, 플라타 항을 떠나 곡물을 싣기 위해 호주로 가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 배는 전 승무원과 함께 어딘가에서 사라졌다. 대부분의 나라는 자체 훈련 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쾨벤하벤호의 뒤를 이어 단 마크 Denmark 호가 훈련선 역할을 했으며, 독일에는 Kommodore Johnsen 호와 아드미랄 카르 판 거 Admiral Karpfanger호(원래 명칭은 르아베니르호), 스웨덴에는 배아 트리케 Beatrice 호, 폐데 를 센 Peder sen 호, 아브라함 뤼드베리 그 Abraham Rydberg 호가 있었다. 핀란드에는 Fav ell 호화 케이프 혼에서 희생된 배 중 하나로 현재 스탠리 항구에 녹슨 선체가 보존되고 있는 펜이나 Fennia 호가 있었다. 벨기에에는 르아베니르L' Avenir 호와 메르카토르 Mercator로, 이탈리아에는 패스트트랙이리라 Atria 호가 있었다. 이상의 모든 범선은 선원의 일부가 훈련생이었으며 곡물을 싣기 위해 호주로 하 해를 떠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오늘날 항해 훈련 선은 대체로 해군용 교육시설이다. 유명한 이탈리아 선박인 Amerigo Vespucci 호와 빨리 누로 호도 마찬가지로, 전자는 장교 후보생 도가 타고 후자는 하사관들이 탄다. 이 2척의 배는 1년에 2번, 해군사관학교 교육 과정에 따라 각기 다른 항구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항로로 순항한다. 순항 기간은 한 번에 100일 정도며 지중해 주요 국가와 북유럽의 항구 몇 군데를 방문한다. 이 두 척의 배는 국제항해 훈련협회가 주관하는 국제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데, 언제 나 멋진 모습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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