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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항해의 역사

속도전

by 부독자 2022. 10. 6.

선체는 변형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건장 범선 보 다 빨랐지만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했고 기동성이 특별히 우수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수심이 얕은 해 안 지대에 적응하기 좋게 흘수선을 개량하는 한편 폭을 넓혀 배수량이 줄어들지 않게 했다. 흘수선을 효율적으로 바꾸자 미국 프리깃은 더 빠르고 민첩해졌으며, 폭이 늘어나 안정성이 더 높은 포대에 화포를 탑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투선으로서도 한결 훌륭해졌다. 이렇게 새로워진 미국 프리깃은 영 국 프리깃과 1:1로 맞붙었을 때 속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프랑스에서 성능이 가장 우수한 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18세기 후반, 미국인 선박 기술자들은 독자적인 유형을 개발했다. 그들이 만든 범선은 그 무렵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가장 큰 미국 프리깃에선 44s는 선체 길이가 61미터쯤 되고 최대 폭이 13미터 정도였다. 동시대의 개량형 영국 445 와 비교하면 7미터쯤 더 길고, 90센티미터 이상 폭이 넓었으며, 프랑스 44s보다는 4미터쯤 더 길고 폭은 30센티미터가량 차이가 났다. 배 등급은 거의 유명무실했다. 갑판에 탑재하는 무기 수량은 다양했다. 일반적으로 포열 갑판에 포신이 긴 11킬로그램짜리 화포를 설치하고, 후갑판에 14킬로그램 카로네이드포 16문, 선수로 갑판에 14킬로그램 카로네이드포 6문, 그리고 함수포함수 砲로 11킬로그램짜리 2문과 7킬로그램짜리 1문을 탑재했다. 길이와 폭이 늘어나고 무거운 각재를 사용한 데 다 후갑판이 더 길어지고 선수로 갑판까지 더해져, 이제 상갑판에 포대를 상당히 많이 배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두 갑판을 수평으로 연결하는 현 문의 폭 이 넓어져 하나로 합쳐지다시피 했으므로, 이물에서 고물까지 상갑판의 높이가 일정해져 돛을 조종하거나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기가 훨씬 편리해졌다. 이것을 경 갑판이라고 불렀다. 거대한 돛을 설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미국 자유 깃의 특징이다. 3개의 돛대에 모두 로열마스트 돛을 달았고, 경우에 따라 가로돛을 달고 셋째 돛대에 위 돛을 달기도 했다. 미국의 445 프리깃 중 가장 빨랐던 프레지던트로는 최대 속력이 무려 14노트에 달했다! 한편 영국인들은 프리깃을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끝나고 식민지국 들과의 충돌도 진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해상 운송업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해상 운송업은 해군에서 축적한 경험을 근간으로 했다. 19세기 초가 되자 극동, 호주, 아메리카 남부와의 무역에 사용될 배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대부분 국가 자금으로 운영되던 몇몇 '회사' 들이 독점의 혜택을 누리던 시대는 끝나고, 수많은 사기업이 등장하여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이민자와 상품을 신대륙으로 운반한 뒤 현지 생산품을 싣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경쟁이었다. 영국 선박 기술자들은 프리깃에 약간 변형을 가한 수송선을 제조했다. 그 결과 해군용 프리깃과 거의 동일하고 탑재한 화포 숫자와 선원 및 장교들의 제 복만 다른 범선들이 대양의 항로를 정기적으로 왕복했다. 특히 이름난 무역선으로 블랙 월 프리깃 Black wall frigate이라고 불리는 배들이 있었다. 블랙 월은 템스강 강가에 있던 유명한 조선소 이름이다. 블랙 월 프리깃은 미국식 프리깃보다는 작았지만 1400톤 이 상이고 선체 길이가 55미터, 폭이 12미터가량 되는 대형 선박이었다. 이러한 선박의 출현과 함께 선체를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로 칠하고 일렬로 된 포문과 선수돌출부가 있으며 고물에 창문을 낸 범선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 이제 조선술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차례였다. 바로 신세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할 때 미합중국의 신생 해군은 당시 천하무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영국 해군과 대등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비결은 후발 주자였던 미국이 그간의 풍부한 조선 기술 전통을 자기 것으로 끌어안는 동시에 기존 선진국들과 달리 관성에 빠진다든가 새로운 시도를 거부한다든가 하는 함정을 비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신생 국가로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선박제조업의 경험을 종합하여 새로운 선체 형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초기의 배들은 모두 신대륙 특유의 실용주의적 경향을 따라 현지의 필요와 조건을 충족시키도록 제작됐다. 미국에서는 해안 지대의 얕은 수심과 불 직하게 부는 바람에 적응하기 쉬워야 했고 특히 빨라야 했다. 늘 생명이 위태로운 나라에서 속도는 특히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폭이 넓은 선체를 개발했다. 불가피하게 건현을 축소한 결과 부피가 줄어든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사각 돛보다 정범식 돛을 선호했다. 풍향이 바뀔 때 항해하기 좋고, 넓고 깊은 만에 위치한 항구에 접근하기 좋기 때문이었다. 밀도가 낮은 후지질 목재가 풍부한 덕택에 선체를 더 가볍게 만들어 선원 수가 적어도 배를 조종하기가 쉽고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식민지 이주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안 지대에서 볼 수 있는 배는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양한 전통이 하나로 융화되었다기보다는 대륙의 조건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배를 차별화하는 요인은 구체적인 기능과 관련이 있는데, 미국에서 해운업 것은 상업적 목적 혹은 방어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서였다. 정복욕은 외국이 아닌 미국 내륙을 향해 발산되었다. 미국인들은 대양 건너편 사람들과 여전히 친척 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최초의 민간 무장선 인근 해역에서 무역에 종사했다. 그들의 조국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에, 민간 무장선들은 서슴없이 해적질에 나섰다. 이런 배들은 주갑판에 화포를 실었고 주갑판을 둘러싼 높은 뱃전에는 포탄을 발사하는 포문이 있었다. 존 팩 oh Peck이 보스턴에서 건조한 래틀스네이 크오는 18세기 중엽 민간 무장선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배는 길이가 27미터, 폭이 6.5미터였고, 건현은 2.5미터에 불과했다. 돛대는 3개였는 데 제1 사장에 3개의 지부와 쉿 돛대에 세로돛을 달았다. 후갑판과 선수로 갑판이 높아져 전체 갑판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며, 화물을 실을 공간이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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